광주봉기열사공원묘지
  2006-10-16

  중산(中山)삼로(三路)교장(較場)북쪽의 홍화강(紅花崗)에 위치한 광주봉기열사 공원묘지는 해방후1927년12일 광주봉기 기간에 영용히 희생한 열사를 기념하기위하여 1954년도에 세운 기념 공원이다.

  중국 공산당원과 혁명민중은 국민당 반동파의 창광한 박해와 참살을 반항하기위하여,1927년12월11일 새벽, 장타뢰(張太雷) 、엽정(葉挺) 、 엽검영(葉劍英) 、위조징(蔿兆徵) 、섭영진(聶榮臻) 、서향전(徐向前) 등 중공 광동성 위원서기의 지도 하에 광저우봉기를 개시하였으며, 최용건 (崔鏞健)등150여명의 북조선 인원과 광저우 영사관에 주재한 소련 인원들 도 봉기에 참석하였다.그러나 적이 강하고 우리군이 약하므로, 봉기는 최종으로 실패하여, 14일부터19일 봉기기간 6일내에 5700여명 공산당원와 혁명민중은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건국후 광저우 정부는 당시의 열사 희생한 홍화강에 민족 풍격이 강한 열사공원묘지를 건설 하였으며, 1957년에 정식으로 대외 개방하였다. 공원묘지 총면적은 18만 평방미터이고, 릉구(陵區) 와 원구(園區) 두개부분으로 나우어져 있다.

  릉구(陵區)에는 정문문루、능묘대도、광주봉기기념비、광주공사 열사묘、 엽검영(葉劍英) 총사령관묘、영웅광장등이 있다. 정문문루는 백화강석을 기준으로, 백옥석에 등적색 오지기와를 배합하였으며, 양측의 비석 정면 석벽에는 주은래가 손수쓴“广州起义烈士陵园” 8 개 큰 글자가 새겨져있다. 문안에는 대리석란으로 둘러진 열사 능묘까지 통한 넓고、 평탄한 큰 화강석길이 있다. 묘는 큰 원형 토지묘이며, 푸르 싱싱한 풀들이 덮여져있고,호위벽에는 주덕이 서명한“广州公社烈士之墓” (광주 공사 열사묘) 글이 새겨져있다. 동쪽 방향에는 진철군(陳鐵軍)와 주문옹 (周文雍) 두열사의 기념 건축물 호심정자(湖心亭)가 있고, 정자엔 동필무(董必武)이 서명한“血祭轩辕”(혈제헌원) 4글자의 가로편액이 걸어져있다.넓고 곧은 능묘 큰길 양쪽에는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이 서있고, 그중의 20개 화단에 빨간 꽃들이 엄려한 자태를 드러내 장엄하고 엄숙、 경건스럽다. 묘도의 북단에 조형이 독특하고, 우의 깊은 광주봉기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 정면에는 등소평이 손수쓴 비명이 새겨져있으며, 비석 주위에는 광주봉기의 전투장면 부조가 새겨져있다.

  원구(園區)에는 “血祭轩辕亭” (혈제헌원정자)、 “中朝人民血誼亭” (중조인민혈의정자)、“中蘇人民血誼亭” (중소인민혈의정자)、 인공호수 、아치형다리가 푸른나무、붉은 꽃에 흩어져 떨어져있고, 새벽에 열사묘를 둘러싸고 솟는 아침 해의 구경은 유달리 아름답다. 공원에는 화목이 번성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호숫물이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오양성신팔경”(“五羊城”의 준말,광주시(廣州市)의 다른 이름)중의 하나인 “홍릉욱일” (“紅陵旭日”)으로 판정하였으며, 1986년 광주시 정부는 “광주시 베스트 텐 유람 경승지”중의 하나로 판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