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월국 궁전 유적
  2006-10-31

왕궁의 중심은 고고학자들이2000년초에 발굴한500평방미터의1호궁전유적이다. 여기서2000년전의 남월왕궁의 두갈래 “산수”를 볼수 있고, 1300년전의 당나라때의 벽돌로 된 도로를 볼수 있으며, 1000년전의 사열남한궁전의 “상돈”기반을 볼수 있으며, 또한 여러가지 건축구조물의 유적들을 볼수 있다. 유적지 구덩이 밑부분에 자갈돌로 만들어져 띠같은 모양을 이룬 “석띠”를 볼수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소장이며, 고대궁전고고학전문가인 유경주가 고찰할때, 이 석띠는 고대 황궁 지붕아래에 깔아서 비물을 받아내는 작용을 일으키는 “산수”라고 하였다. 한나라때의 건축구조중에서, 자갈돌로 “산수”를 만드는 것은 계급적 제한이 있었는바, 만약, 궁전 지면 사방에 모두 “산수”를 만들어 놓는다면, 이는 황궁의 표지이고, 양쪽에만 만들어놓는다면 이는 왕의 거처라는 표지이다. 현장에서 볼수 있다 싶이 궁전의 북쪽과 동쪽에 모두 “산수”가 깔려있었고, 중국 건축에서의 대칭 규칙에 의한다면, 아직 땅밑에서 나오지 않은 서쪽과 남쪽면에도 “산수”가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므로, 이 궁전은 남월국이 한나라 황궁에 근거하여 구축한 것이었다. 규모로부터 볼때 이는 남월왕이 사무를 보는 곳이었다. 유소장은 궁전은 이 하나뿐이 아닐 것이며, 북경의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같은 다른 궁전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유소장의30년 궁전 고고학 경험으로부터 볼때 이미 땅밑에서 나타난 궁전은 상당한 규모를 갖추었는바, 남쪽에는 더 큰 궁전이 없을 것이고, 더큰 면적의 궁전은 서쪽에 있을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소개에 따르면, 현재 나타난 부분은 남월왕궁의 일각일 뿐이며, 전체 궁전군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바, 궁전의 주체부분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것으로 알려졌다. 왜냐면, “산수”가22미터밖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계단이나 문턱도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호궁전의 북쪽 성벽의 길이는50미터 이상에 달할것으로 예측된다. 자료소개에 따르면, 서안의 한나라시기 건축인 장락궁 앞 궁전의 동서 길이는50장에 달하고, 미앙궁은 무려20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