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남월왕묘지는해방북로의상강산위치해있는바, 이는서한초년남월국제이대황제조미의묘지이다. 조미는월타의손자로서문제라고불리었으며기원전137년부터122년사이에즉위하였다. 1983년에 발굴할때 유물들중에는 “문제행석”이라고 새겨져 있는 금도장 하나와 “조미”라고 새겨져 있는 옥 인장 하나가 발견되여 묘지 주인의 신분을 증명해 주었다.
남월왕묘지는 산을 깎아 만들어졌는바, 상강산 정상에서20미터의 돌을 깎아내어, 평면으로 “ㅗ”자형의 땅굴을 팠고, 동서방향으로 땅굴을 터서 묘실을 만들었으며, 남쪽으로 경사진 지하통로를 만들었다. 묘실은 홍사암으로 황궁침실의 모양새로 지하궁전을 지었으며, 묘지 천장에는24개의 거대한 돌로 지붕을 만들었다. 묘실은 생전의 궁전처럼 만들어졌는바,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7개의 방으로 이뤄졌고 그 넓이는12.5미터, 길이는10.85미터이다. 묘지의 주인은 뒷부분의 중실에 모셔졌는바, 그 앞은 객실이고 그 뒤는 보물고였다. 순장자는 모두15인이었는바, 첩4명에 노복7명이었다. 묘지 앞부분 묘실의 사방에는 구름도안이 새겨져 있고, 음식용기, 청동악기, 석제악기와 술잔 및 바둑판 등이 있었다. 두 주 묘실은 병기, 차, 말, 갑옷, 활, 오색화약과 생활용품, 보물들이 매장되어 있었으며, 특히는 페르샤에서 온 은함과 아프리카의 상아와 짙은 남색의 유리조각들이 들어있었다. 이런 유물들은 남월국 초기 혹은 더욱 일찍한 시기부터 광주는 이미 페르샤와 아프리카 동 해안과 해상무역을 진행해 왔음을 증명한다. 뒷부분의 묘실에는 묘지 주인의 안방으로서 얇은 비단옷, 9개 인장이 들어 있었는바, 가장 큰 인장은 “문제행석”이라 새겨져 있는 금 인장이었으며, 이외 “제인”, “태자”금인 등 인장과 “조미”라 새겨져 있는 옥 인장이 있었다. 동쪽 묘실은 첩의 보물고로서 순장한4명의 부인은 각각 하나의 인장을 갖고 있었다. 서쪽 묘실은 노복들이 묻혀있는 곳인바, 모두7명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관이 없었고 묘실 뒤에 돼지, 소, 양 등 가축들이 발견되었다. 뒷 저장고는 음식물들을 저장하는 창고로서 백여개의 대형 동, 철, 도자기로된 주방도구와 용기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유물들은 모두 천여개(세트)에 달했는바, 금 인장은 중국에서 발견된 첫번째 한나라 시기 제왕의 금 인장이다. 이런 유물들의 발견은 진나라 및 한나라시기 중국 남부지역의 개발, 생산, 문화, 무역, 건축 등 상황 및 남월국의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따. 남월왕묘지의 발견은 중국 근대 고고학의5대발견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서한 남월왕묘지 박물관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 |